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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고성군 벼락치기 여행기(2)

다락방 중년 2024. 4. 3.

(1편은 여기)

 

간성읍

이곳에서 군생활을 한 나는 당시에도 철이 덜 들어 약간은 에고이스트의 기질이 있었다. 대학 생활을 통해 많이 나아지기는 하였지만 군생활때 벌어지는 이해가 안 되는 일들에 대해 솔직히 엄청난 반감을 가지곤 하였다. 당시에 군생활을 한 누구든 그러한 생각을 하였겠지만 이걸 속으로 삼키지 않고 밖으로 표현을 하니 그게 문제가 된 일이 많았었다. 지금은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지도 모르는 같이 군생활을 한 동기들에게 많이 미안한 마음이 살아가면서 많이 들었다. 

 

휴가 때마다 항상 들렸던 간성 버스터미널. 간성읍을 우회해서 새롭게 뚫린 7번 국도 때문에 이곳을 찾는데 한참이 걸렸다.

기억 속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졌지만 그 형태는 그대로 남아 있다. 찬란하게 보이는 마크사도 여전히 존재한다. 아직도 군인들은 밖에 나와서 오바로크를 치나 보다. 

간성 터미널

 

그리고 사단 복지관. 이곳은 전방 오지까지 면회를 찾아가기 힘들기 때문에 이곳에서 면회신청을 하면 각 예하부대로 연락이 가서 병사들이 주말에 이곳으로 나오는 집합소였다. 식당도 있었고 숙박도 가능했던 곳으로 기억한다. 아직까지 그 역할을 수행하는지 모르겠지만 건물 상태가 말이 아니다. 다만 30년이 지난 아직도 존재라는 것을 하고 있어서 많이 반가웠다. 

사단 복지회관

간성읍내를 구경하고 차를 부대 입구까지 천천히 몰고 갔다. 이 길은 내가 군생활을 할 때 분명히 비포장 도로였는데 지금은 말끔히 포장이 되어 있었다. 당시만 해도 군인들 밖에 이용하지 않는 도로였고  군용 트럭을 타면 엉덩이가 계속 들썩거리면서 지나다니던 나름 스릴 있었던 도로였는데 이제는 민간인 차량도 많이  보이고 예전의 모습은 기억하기가 어렵다. 

 

이곳은 겨울에 눈이 정말 징그럽도록 많이 왔다. 휴가 복귀하는 날 눈 때문에 복귀자 수송차량이 나오지 못해 수북이 쌓인 눈길을 한참을 걸어 복귀한 기억은 이제는 추억이다. 그때의 나는 눈이 수북히 쌓인 이길을 한참을 걸어갈 정도로 젊었다는 말.

이제는 말끔해진 도로

 

 

몇 굽이를 넘어 눈에 익숙한 모습이 갑자기 나오더니 '오오~~ 있구나..'

 

아직도 부대번호가 전혀 바뀜이 없이 여전히 그대로 존재한다. 반가웠다. 정문 위병소까지 차를 몰고 가본다. 아무도 없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요즘은 유리로 된 간이건물 같은 곳에 근무자들이 들어가 있었다. 군사보안문제 때문에 사진을 찍을 수는 없었고 말이라도 한번 걸어볼까 했는데 근무자를 밖으로 꺼낼 수는 없지 않은가? 30년 전에 여기서 군생활을 했다는 것이 뭐 대단한 자랑거리라고..

 

젊은 층의 인구가 줄어가고 국방개혁이라는 군의 시스템 정비사업에서도 아직 굳건하게 존재를한다는 것에서 일단 무척이나 기뻤다. 힘들었었고 다시 기억하기에 즐거운 경험은 아니었지만 내가 머물렀던 그곳이 사라진다면 내 경험마저 근거가 없어지는 듯한 그런 느낌이 들지 않겠는가? 마치 졸업한 초등학교가 폐교되어 사라지는 듯 한 느낌 말이다. 

 

초병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위병소 멀찍이 차를 세우고 잠시 주변을 둘러보고는 다시 빠져나왔다. 

 

젊은 날 그 시절의 나는 먼 훗날 내가 여기를 다시 그리워서 방문을 하리라는 생각도 못했을 것임에 분명하다. 세월이 아주 많이 지나면 시간은 망각이라는 선물과 더불어 그리움이라는 이상한 조합도 함께 준다는 것을 이해할 나이가 아니었을 테니 말이다. 

 

3편은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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