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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관광지]경주 불국사 방문기 그리고 또 다른 단상..

다락방 중년 2024. 11. 20.

경주를 방문하게 되면 누구나 한 번쯤은 불국사 방문을 할 것이다. 수학여행뿐만 아니라 단기여행으로 오는 여행객들도 불국사를 방문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으리라 생각이 된다. 그만큼 불국사는 신라의 건축 예술의 모든 것을 담고 있으며 그 아름다움은 물론이고 불국토를 완성하기 위해 신라인들이 완성한 노력의 결정체이다. 초등학교 시절 수학여행으로 방문한 이후 불국사는 정말 오래간만에 방문을 하게 되었다. 당시의 기억은 거의 남아 있지 않고 다보탑 앞에서 찍었던 단체사진이 나의 방문을 증명하는 유일한 단서일 뿐이다. 
 
아침에 서둘러 방문한 불국사는 아직 개방을 하지 않았다. 잘 몰라서 불국사의 후문 주차장에 주차를 했는데 오른쪽으로 차를 몰고 더 올라가시면 불국사의 정문 앞에도 주차장이 있다. 주차비는 1000원임을 알아두시라. 우리는 후문에 주차를 하고 정문까지 걸어서 올라갔다. 

불국사의 후문. 오른쪽으로 가면 정문 주차장도 있다.

 

불국사의 정문

 
불국사에도 가을이 완연하다. 울긋불긋 물들어 있는 수목들은 불국사의 아름다운 경관들을 더욱 돋보이게 해 준다. 날이 정말 좋은 가을날의 완벽한 방문이다. 누구나 찾는 관광지인 만큼 단체 관광객과 외국인들 그리고 가족 단위의 관광객들로 아침 이른 시간이지만 사람이 참 많다. 

불국사의 가을
아름다운 가을의 정취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조금만 걸어가다 보면 오른쪽에 불국사 박물관이 있다. 입장료는 2000원이고 별도로 내부 촬영이 불가능한 관계로 자세히 리뷰를 하지는 않겠지만 매우 불국사에 관한 역사와 정보들이 매우 잘 정리가 되어있다. 특히 석가탑의 보수공사 때 무구정광대다라니경과 사리함을 발굴한 기록들도 영상과 전시물로 잘 정리가 되어 있어 역사에 관심이 많은 분들은 방문을 해도 후회하지 않으실 것이다. 

불국사 박물관 정문
불국사 박물관 내부 안내도

 
 
조금 더 이동하면 청운교와 백운교(오른쪽)와 연화교와 칠보교가 보인다. 청운교와 백운교는 자하문을 거쳐 대웅전과 연결이 되고 연화교와 칠보교는 안양문을 거쳐 극락전과 연결이 되는 구조로 되어있다. 단지 계단일 뿐인데 '교'라는 다리를 표현하는 이름을 지은 것은 불국사의 창건 당시 불국사의 아랫부분이 연못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연화교와 칠보교(왼쪽) 그리고 백운교와 청운교

 
불국사 안으로 진입을 하게 되면 예전의 그 모습 그대로의 다보탑과 석가탑이 보인다. 예술적인 측면에서는 확실히 석가탑보다 다보탑이 예쁜 느낌이다. 조금 과장하여 말하자면 다보탑은 여성스럽고 석가탑은 남성스러운 느낌이다. 두 개의 탑 모두 사실 상식적으로도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는데 1000년도 훨씬 이전에 이들이 돌을 사용하여 만들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할 따름이다. 마치 돌을 무슨 밀가루 반죽을 주물러 만드는 듯한 수준인데 현대의 기계가공을 사용하여 만들어도 절대로 쉽지 않은 예술품이다. 더불어 원래는 4개였던 다보탑 기단부의 사자상이 실제로 하나밖에 보이지 않아 안타까움을 더해준다. 

다보탑과 석가탑

 
아쉽게도 방문한 날에 대웅전이 보수공사 중이라 대웅전은 제대로 볼 수가 없었고 옆에 있는 극락전만 제대로 둘러볼 수가 있었다. 아래 사진에서 무한도전에도 나온 극락전의 황금돼지를 찾아보시라. 이 황금돼지는 통일신라 때 만들어진 것은 아니고 임진왜란 때 불에 타서 소실되었던 건물들을 조선 후기 영조시대에 재건하면서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숨은 그림 찾기 : 황금돼지를 찾으시오.

 
사실 이번에 불국사를 방문하면서 나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따로 있었다. 다름이 아닌 불국사의 벽면과 하부를 떠받치는 각종 기단의 돌들이었다. 이미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쓴 미술사학자 유홍준 교수가 밝힌 바 있지만 직접 눈으로 확인을 하니 그 정교함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다보탑이나 석가탑보다 더 정교해 보였다. 기단의 최하부 받침돌을 하부 지지돌의 형상에 맞춰 정밀하게 가공하여 일일이 끼워 맞춘 것이 보이시는가? 돌사이에 틈이 있으면 들어가게 맞추고 튀어나와 있으면 하부석을 깎아내어 또 그 합을 맞추는 손으로 했다고는 도저히 상상하기도 힘든 작업들이다. 또한 지지돌이 미세하게나마 곡선형이면 하부석도 그와 똑같이 가공하여 틈을 줄이고 때로는 공간으로 남겨놓아 적절한 지지하중을 배분하는 , 즉 공학적인 센스가 없으면 이는 도저히 진행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다. 당시에 정교한 가공기계가 있었던 것도 아닐 터이고 이를 미리 설계하여 도면을 제작하는 작업이 있었을 리가 만무하기에 그 놀라움은 더욱 크다. 깊이 방향으로는 어떻게 제작되고 배치가 되어 있는지 매우 궁금했지만 이를 확인할 방법이 없어서 아쉬울 따름이다. 

하부석과 돌들의 합을 조각하여 맞추어 놓았다.
자세히 보면 매우 정교하게 맞추어져 있다.

 
뿐만이 아니다. 불국사 하부의 벽면을 마치 젠가를 하듯 차곡차곡 예쁘게 쌓아 올린 수준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일일이 돌을 다듬고 세공하여 매우 세심하게 작업이 되어있다. 이런 수평면을 작업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사선으로 되어 있는 부분까지 매우 정교하게 배치한 것은 또 하나의 예술품 수준이라고 할만하다. 물론 지지돌의 단면들이 매우 깨끗한 상태인 것으로 보아 불국사의 보수공사 때 일부 손을 본 것일 수도 있지만 통일신라시대에도 이렇게 석단을 사용하여 불국사를 건축하였던 것은 자명한 사실일 것이다. 

마치 젠가를 하듯이 예쁘게 쌓아놓았다.
사선 부분도 매우 정교하다.

 
중국의 만리장성이나 이집트의 피라미드처럼 사람의 눈을 의심케 하는 크고 웅장한 건축물이 한국에는 없다. 이러한 대공사를 진행하는 것은 국가의 경제력뿐만이 아니라 인적자원도 충분해야 하고 더불어 기술력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필자는 우리나라에 이런 건축물이 없는 것이 조그마한 국토나 선조들의 능력이 불충분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고 생각을 한다. 아마도 이러한 연유는 한민족의 특성 때문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말도 안 되는 일은 절대로 두고 보지 않는 민족성 때문이다. 
 
만약에 고려시대의 한 왕이 자신이 죽어서 묻힐 무덤을 피라미드처럼 웅장하게 짓고 싶어서 큰 공사를 진행하여 인력과 물자를 징발한다고 가정해 보자. 일단은 신하들의 엄청난 반대와 더불어 그들의 선에서 역모가 일어나거나 설사 역모가 발생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각지에서 민란이 일어나 난리가 났을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왕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권력을 보장할 수 없게 되는 것이고 그러니 이러한 대역사를 진행할 수가 없다. 전란 때마다 의병으로서 저항을 하거나 가혹한 일제강점기에 선조들의 항쟁만 봐도 한민족은 절대 지배하기 쉬운 민족이 아니다. 따라서 저런 거대한 건축물이 우리나라에 없다고 해서 절대로 우리 문화유산에 자부심을 가지지 못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이는 한민족의 강인한 민족성이 그런 건축물과 배치가 되기 때문이고 우리 선조들의 지혜와 기술의 정교함은 여러 유물등을 통해 충분히 확인할 수 있기에 더욱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고 생각된다. 
 
많은 시간이 지난 후 방문한 불국사에서 정말 좋은 시간을 보냈다. 나름 엔지니어로서 현업을 오랫동안 해오다 보니 어릴 적 당시에는 알 수가 없었고 전혀 관심도 없던 것들이 눈에 보이게 된다. 역시 세상은 아는 만큼 눈에 보이는 법인가 보다. 
 

 

불국사

경북 경주시 불국로 385 (진현동 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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