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골프] 경주 CC 라운딩 후기(백돌이를 탈출하기 위한 현실적인 조언)
사실 골프라는 운동을 오랜 시간동안 해왔지만 집사람과는 함께 라운딩 한 기억이 없다. 한창 바빴던 직장생활 중에서는 주말이 되어도 동료들이나 비즈니스 파트너들과 함께 라운딩 하기도 빠듯한 시간이었고 휴가등을 이유로 해외에 같이 나가서 라운딩을 하는 것도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거나 시간적인 여유가 있더라도 서로 간의 시간이 맞지 않아 좀처럼 기회가 없었다. 집사람은 스크린에서는 여걸이고 여장부지만 필드에서는 약하다고 늘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하긴 골퍼라면 누구나 스크린에서는 여포지만 필드에서는 움츠러드는 자신을 발견하는 시간을 누구나 거쳐야 한다.
국내 골프는 기본이 4인이라 부부간에 오붓이 라운딩을 하는 것이 어렵고 무조건 인원을 맞춰서 나가야 하는데 이렇게 인원을 맞추는 것도 보통일은 아니다. 우리 부부처럼 극소심한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들과 조인하는 것이 쉽지 않은 데다가 지인들과의 시간을 조절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경주 여행은 나름 공을 잘 치는 처제가 동반했다. 평일 경주지역의 골프장은 3인이 부킹이 가능하므로 3인으로 카카오 골프를 통해 예약했고 시간은 아침 일찍 티오프 하는 것으로 잡았다. 가격은 그린피만 인당 98000원. 11월이라 아침에는 매우 쌀쌀하므로 약간 늦은 시간에 예약을 해보려 했는데 조금만 시간이 늦어지면 가격이 14만 원대로 뛰어오르는 데다가 그나마도 자리가 별로 없었다. 차라리 일찍 운동을 하고 경주시내를 더 돌아보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 지역에서의 라운딩은 처음이다. 주변에 몇 개의 골프장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아직은 필드 초보인 와이프를 위해 비교적 쉬운 구장인 경주 CC로 선택을 했는데 매우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경주 CC는 이미 스크린에도 많이 올라와 있고 역사도 오래된 나름 전통이 있는 구장이다. 지역의 강자답게 매우 깔끔한 클럽하우스 외관을 자랑한다. 클럽하우스 내부도 매우 정갈하게 잘 정돈되어 있다. 라커룸이나 사우나 시설도 부족함이 없이 잘 되어 있어 골프 외적인 요소에서는 전혀 불만이 없다. 클럽하우스 내부의 그늘집도 매우 깔끔하다.


준비를 마치고 내려가니 아직도 너무 어두컴컴하다. 사실 이 정도의 어두움 속에서 플레이를 해본 적이 없어 많이 어색했다. 물론 조명이 켜져있기는 했는데 셋업을 서게 되면 공 주위를 내 그림자가 뒤덮어서 어두운 것은 여전했다. 무엇보다 문제는 그린과 페어웨이의 컨디션이었는데 특히 이날 갑자기 아침온도가 2도 내외로 급하강함에 따라 그라운드에 대부분 서리가 끼어 있었다. 특히 그린은 아예 하얗게 서리가 뒤덮여 있어서 공이 구르지를 않았다. 늘 하던 거리감으로 퍼팅을 하게 되면 절반을 겨우 넘는 수준이었다. 음.. 오늘은 퍼팅이 문제군.. 하여간 모든 골퍼들에게는 핑계가 있다. ㅎㅎ

집사람과 처제도 나름 잘 따라오기는 했는데 모두 같이 퍼팅에서 얼탱이를 타고 있다. 그런데 점점 날이 밝아지고 해가 떠오르면서 문제는 더 심각해져 갔다. 온도가 올라가면서 그린의 서리들이 녹기 시작한 것이다. 서리가 녹으니 이제는 퍼팅을 하면 공이 물을 뿌리면서 굴러가는 수준이다. 오히려 서리가 깔려 있을 때 보다 더 구르지 않는 것. 계속 퍼팅을 헤매고 다닌다. 3 퍼트를 하면 기뻐해야 할 정도이다. ㅠㅠ



이날은 전반홀은 선코스와 후반홀은 문코스를 도는 것으로 되어있었다. 선코스는 경주 CC의 초창기부터 있었던 코스로 거리가 조금 있지만 광활한 페어웨이를 자랑하고 그린도 무난한 수준이다. 백돌이들이 도전을 하여 90타에 이름을 올리기에 가장 적절한 구장이 아닐까 한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공을 잃어버리기 힘들 정도이다. 문코스는 거리는 조금 짧지만 비교적 난이도가 있는 재미있는 코스이다. 그러나 난이도가 상당한 편은 아니라 백돌이들도 충분히 즐길만한 코스이다. 마침 해가 떠오르고 골프장에서 일출을 맞이하는 것도 처음인 경험인데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골프장에서 일출을 맞이하는 것도 썩 괜찮은 경험이었다.


기온이 올라 갈수록 그라운드 상태는 점점 더 좋아지고 이제는 퍼팅도 정상적인 공의 움직임을 보이게 된다. 아침의 날씨는 추웠지만 시간이 갈수록 푸른 가을하늘과 더불어 정말로 상쾌한 라운딩을 진행할 수 있었다. 서리에 뒤덮여 있을 때는 잘 몰랐지만 페어웨이와 그린의 상태가 매우 좋다. 일부 조그마한 디봇이 있기는 하지만 커다란 디봇은 잘 보이지도 않았으며 관리가 매우 잘 되어 있는 구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 기온이 올라가면서 스코어도 점점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처음으로 경험한 집사람과 처제와의 라운딩에서 매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가 있었다. 집사람은 초반에는 잘 따라오면서 제법 좋은 샷을 날렸지만 후반에는 힘이 달리는지 스코어가 무너져 내렸다. 골프 실력이 문제가 아니라 체력을 길러야 할 듯한데 체력을 올리기 위한 특훈을 한번 시켜야 할 듯하다. 내 등짝을 때릴 때 쓰는 힘을 골프에 쓰시는 게.. ㅡㅡ; 그런데 의외로 처제가 무너지지 않고 잘 치네. 모두들 초반에 퍼팅에서의 삽질만 아니었으면 훨씬 스코어가 좋았을 듯한데 그 점이 아쉽기는 하다.
라운딩을 도와주신 캐디님은 베테랑이셨지만 매우 친절하시고 잘 가이드를 해주셨다. 플레이어가 알아야 할 점을 홀 들어가기 전에 설명을 잘해주셨고 직접 거리측정기를 가지고 다니며 거리도 불러주셨다. 캐디님들의 수준이 이 정도라면 플레이어들은 오직 플레이에만 전념하면 된다. 구장의 역사가 오래되고 정평이 있는 만큼 대부분의 캐디님이 그렇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매너 있게 플레이하신다면 캐디님과 함께 즐거운 명랑 라운딩을 하실 수 있을 듯.
골프라는 운동 사실 멘탈이 절반이라고 생각이 된다. 스윙도 문제지만 일관성 있는 스윙을 하려면 주변의 방해요소를 무시해야 하는데 이것이 참 어렵다. 말이 나온김에 이 기회에 백돌이 분들을 위한 현실적인 조언을 조금 드리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서둘지 말라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하수들은 공을 많이 쳐야 하는 만큼 필드에서 매우 바쁘다. 사실 동반자 모두 진도가 나가지 못하고 나의 샷만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 되면 마음은 더 바빠진다. 거기에 앞팀은 보이지도 않고 뒤팀이 기다리고 있다면 더 그렇다. 따라서 샷이 잘 될 수가 없다. 이럴수록 멘탈을 더 관리해야 한다. 빨리 치려고 하지 마시라. 동반자들은 이미 그대가 하수인 것을 알고 있고 그대를 위한 배려를 충분히 해주는 사람들과 같이 왔을 터이므로 서두를 필요가 없다. 동반자의 짓궂은 농담이나 구찌도 웃어넘기시라. 하수는 원래 그런 것이다. 그렇다고 샷하나 하는데 몇 분씩 쓰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급한 마음을 가지지 말고 마음의 여유를 가지시라는 말이다. 정말 많이 밀린다면 차라리 몇 번의 샷을 스킵하더라도 여유를 가지고 치는 경험을 해보셔야 한다. 서두르는 마음으로는 절대 좋은 스코어가 나올 수 없다.
두 번째는 과감해지라는 것이다. 클럽을 선택할 때도 퍼팅을 할 때도 짧은 것보다 긴 것이 좋다. 세컨샷에서 너무 커서 OB가 나는 경우는 잘 없다. 그렇게 잘 맞을 정도의 샷은 하수시절에는 필드에서 잘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약간 오버해서 멀리 보낸다는 생각을 할 때 오히려 괜찮은 샷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실제 필드에서 치는 내 샷의 거리는 연습장에서 치던 베스트 샷이 아니라 평균적인 거리임을 항상 염두에 두셔야 한다.
마지막으로 그린의 깃발은 쳐다보지도 마시라. 무조건 그린의 한가운데를 보고 공략을 하시는 것이 좋다. 그린의 깃발을 겨냥한다고 그대로 가지도 않으며 부담감만 늘어날 뿐이다. 그린의 한가운데를 보고 겨냥을 하고 그린에 올린다는 목적으로만 샷을 한다면 스코어가 확 줄어드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물론 이런 말을 하는 나도 고수는 아니지만 위의 전략으로 백돌이를 벗어난 것 같다. 아직 컨디션이 안 좋으면 가끔씩 삽질도 하지만 골프란 운동이 원래 그런 것이다.
처음으로 가족들과 즐거운 라운딩을 즐긴 경주 CC는 초보들에게 매우 친화적인 구장이라고 생각이 된다. 긴 백돌이 생활에 지친 분들이라면 한 번씩 도전해 보셔도 좋을 듯하다. 의외로 골프에 자신감을 가질 수도 있는 난이도가 비교적 낮은 쉬운 구장이며 매우 잘 정돈된 구장이다. 경주지역에 여행을 오시는 골퍼분들 특히 백돌이 분들은 기회가 된다면 꼭 도전들을 해보시라. ㅎㅎ
경주CC
경북 경주시 보문로 182-98 (북군동 375-1)
place.map.kakao.com
그리고 이 글은 경주 CC와는 1도 상관이 없는 순수 후기임을 알아 두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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